어두운 책상에서의 내밀한 고백 2_독서후기

쏜애플의 처녀작, 마지막 세 개의 트랙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단지 바깥의 소음을 무관한 것으로 치워내기 어려워서였으나, 언제나 그렇게 해왔듯 반복되는 선율은 다시금 나의 분위기를 잠식한다. 이전에 이 음악과 함께 했었던 많은 시간들, 그것들을 같이 간직하면서 나는 이 글을 읽고 때로는 그대로 써내려가며 상념에 골똘히 잠겨들었고 이따금 불안에, 이전에는 막연하기 짝이 없으나 지금은 선명하기 그지없는 그것을 같이 기억하겠다.

수치심이란 간명한 단어가 떠오른다. 그것이 시선에 오래도록 머무른 이유는 역시나, 나의 치욕적인 봄날을 간결하게 요약해줄 수 있는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수치스러웠다고 적는다. 풍경이 폐쇄에 일조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혐의를 받아가면서 내적으로 보편성을 찾아가는 작업이 그도 모르게 진퇴양난의 독백으로 자연스레 빠져버리지는 않았는지를, 다시 반성한다.

글의 전반에 흐르는 어조는 시종일관 차분하나 결코 긴장을 결여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에서 온 특색 없는 나는 학창 시절의 불쾌한 기억 때문에 집단으로 흐르는 모든 정경에 적개심을 보내고, 바다를 건넌 독일에서 만난 요아힘, 아네스, 비욘, 페터 등은 손님에게 그리 안온한 장면을 드러내주지 않는다. 침묵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 서로의 교감과 아네스의 옛날을 간직한 빛바랜 결혼사진들, 이국의 날카로운 겨울의 냉기들은 작품 전체에서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M과 헤어진 이후의 나는 지독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끝내 그 모두를 알 수 없는 무엇, 심경의 배후에서 이상하게 일렁이는 0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내가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갖는 적대적인 감정은 분명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불쾌감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별다른 인상을 길게 남기지 않는다.

신체가 허약한 M은 '진지한 시선이 결여된 정신'을 그 무엇보다도 혐오하고 이는 인간적 애정에 대한 성찰의 차원에서가 아닌, 그 외부에 존재하는 극히 관념적인 무엇에 그 연원을 둔다. 언어 자체를 문학으로서 응시하고 인성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갖는 그와 한없이 차가운 내적 긴장을 지닌 내가 불러일으키는 사랑은 부연할 필요도 없이 이미,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그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 생략된 채로 남겨진 부분에서는 찰나의 따스함만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식어버린, 아니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무엇으로 화한 사랑은, 그 모두를 돌아보는 이에게는 지옥의 순간을 절개하는 일에 다름 없으리라. 처참함으로 돌변할 줄 꿈에도 몰랐기에 더욱 비참한, 그런 장면들 말이다.

작품의 얼개를 이루는 모티브 중 하나는 예술을 응시하는 인간의 태도 혹은 자세이다.

음악은 불만과 결핍과 갈증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부에서 나왔으나 동시에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을 응시한다. 혹은 인간의 너머를 응시한다. ᆢᆢ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p145)
혹은 예술이란 것은 인간의 오감이나 지성을 능가하는 어떤 영역의 것으로, 그것에 대한 판단은 보편적인 도덕률을 초월하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ᆢᆢ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출된 화면에 의한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예술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p153)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나는 글쓰기 그 자체의 주제를 어떠한 표정으로 다루고 있는가? 작품 안에서 인물들의 사이를 관류하는 이 질문은 주어만 바꿔넣는다면 예술을 응시하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된다. 음악이 멈췄을 때 라디에이터 속을 지나가는 물의 기척 또한 특별한 기억과 합쳐지는 순간 지금의 심경을 증언하는 또 다른 청각적 풍경이 되지 않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녀가 요아힘에게 제출할 과제를 M에 대한 내밀한 고백으로 채워넣었던 것은 이미 그녀가 '고백'했듯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잠식하는 수치심을 그녀는 그 운명적인 이끌림으로 방어해내려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뿐.


주체성과 타자성 연구

주체성과 타자성, 로렌초 키에자(Lorenzo Chiesa), 이성민 역, 도서출판 난장, 2012


차례

서론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1부. 상상적인 것(타자)의 주체


1장. 상상적인 것(타자)의 주체

1.1. 서론: 주체와 자아
1.2. “나는 타자이다”: 이미지와 거울단계의 (탈)형성적 기능
1.3. 애증, 이상적 자아와 자아이상
1.4. 의식, 무의식, 그리고 콤플렉스


제2부. 상징적인 것(타자)의 주체


2장. 언어처럼 구조화된 무의식

2.1. 서론: 소타자에서 대타자로
2.2. 말의 기능
2.3. 메시지 개념
2.4. 기표, 기의, 문자


3장. 은유로서의 오이디푸스

3.1. 서론
3.2. 좌절 이전의 신화적 단계, 그리고 원초적 좌절
3.3. 좌절의 변증법,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첫 (“전오이디푸스적”) 단계
3.4.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두 번째 단계와 세 번째 단계들
3.5. 성구분과 여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3.6. 부성적 은유, 아버지의-이름, 그리고 남근
3.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무의식의 탄생


제3부. 실재(적 타자)의 주체

4장. 타자의 타자는 없다

4.1. 서론
4.2. “타자의 타자는 있다”로부터……
4.3. ……“타자의 타자는 없다”로
4.4. “실재”란 무엇인가?


5장. 환상의 주체 …… 그리고 그 너머

5.1. 환상의 주체와 죽음충동의 기능: 개관
5.2. 환상의 주체와 욕망
5.3. 환상의 주체와 대상 a
5.4. 순수 욕망, 향유, 그리고 정신분석의 윤리
5.5. j'oui's-sens, jouis-sens, jouis-sans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detail

헤겔의 정신현상학 I 연구

헤겔의 정신현상학 I, 장 이폴리트(Jean Hyppolite), 이종철, 김상환 공역, 문예출판사, 1986



차례

I. 《정신현상학》에 대한 일반적 고찰

1. 《정신현상학》의 의미와 방법
2. 역사와 《정신현상학》
3. 《정신현상학》의 구조


II. 의식, 또는 개념의 현상학적 생성

서론
1. 감성적 확신
2. 지각(知覺)
3. 오성(悟性)


III. 자연적 자기의식에서 보편적 자기의식으로

서론; 의식에서 자기의식으로의 이행
1. 자기의식과 生; 자기의식의 자립성
2. 자기의식의 자유; 금욕주의와 회의주의
3. 불행한 의식


IV. 현상학적 측면에서의 이성

1. 이성과 관념론
2. 자연의 관찰
3. 인간 개체성의 관찰
4. 행위하는 이성과 근대 개인주의
5. 인간 작품 및 행위의 변증법


참고 문헌 목록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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